물방울이 똑똑, 하늘에서 내려오기 시작하면 숲속은 조용히 숨을 고릅니다. 풀과 나무, 꽃들은 바쁘게 움직이지 않지만, 비를 맞으면서도 분명히 달라져요. 어린아이가 창밖을 보며 “비가 오니까 풀도 기분이 좋아 보여!”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들은 아주 부드럽게, 조용히 변화해요.
비가 떨어지면 제일 먼저 풀잎 위에 동그란 방울들이 맺혀요. 작은 구슬처럼 반짝이는 물방울들은 풀에게 시원한 인사를 건네요. 햇빛 아래서 말라가던 초록빛 풀들은 “와, 고마워!” 하고 속삭이듯 숨을 깊이 쉬어요. 물방울은 풀의 몸속으로 스며들고, 풀은 마치 목이 마르던 아이가 물을 마시듯 기운을 차려요.
나무들은 비가 오면 조용히 귀를 열어요. 그들은 바람 소리도 듣고, 비의 속삭임도 들어요. 잎마다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마치 나무들이 서로 주고받는 인사 같아요. “너도 잘 있었니?” 하고, “우리 이 비를 잘 받아보자.” 하고요. 나무의 뿌리는 땅속에서 물을 천천히 마셔요. 그렇게 나무는 몸속 구석구석을 촉촉하게 적셔요.
비를 제일 좋아하는 친구들 중엔 꽃들도 있어요. 꽃들은 비가 오면 살짝 고개를 숙여요. 마치 “어서 와요, 기다리고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어떤 꽃들은 빗방울이 꽃잎에 닿으면 작은 떨림을 보여줘요. 마치 간지러운 듯이요. 꽃은 비를 마시고 다시 피어나요. 흐린 날인데도, 비가 씻어준 덕분에 색이 더 또렷해져요.
비가 많이 올 때는 흙도 달라져요. 평소에 바스러지던 흙은 촉촉해지고, 냄새도 달라져요. 사람은 그 냄새를 맡고 “비 오는 날 냄새”라고 부르지만, 식물들에게 그건 생명의 냄새예요. 흙은 뿌리를 안아주고, 물을 모아서 풀과 꽃과 나무에게 나눠줘요. 마치 따뜻한 엄마 같은 모습이에요.
비가 내릴 때 숲속은 모두 조용하지만, 그 안엔 수많은 움직임이 숨어 있어요. 개울가로 물이 모이고, 풀 사이에서는 조그마한 벌레들도 비를 피하며 쉼터를 찾아요. 하지만 풀과 나무는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어요. 그들은 비가 와도 도망가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 비가 자신들을 살게 해주는 고마운 친구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비가 그치면, 식물들은 마치 깨끗한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일 때가 있어요. 먼지 하나 없이 말끔해지고, 반짝이는 물방울들이 햇살을 받아 작은 별처럼 빛나요. 비를 맞은 뒤의 나무는 더 짙은 초록을 품고, 꽃들은 살짝 젖은 모습으로 햇살을 기다려요. 이 모습은 마치 샤워를 끝낸 아이가 수건을 두르고 서 있는 것 같아요.
작은 풀도, 큰 나무도, 조그마한 꽃도 비가 오면 잠시 멈추고 조용히 숨을 쉬어요. 그 시간은 누가 시끄럽게 굴지 않고, 누가 누굴 밀치지 않고, 모두가 서로에게 조용한 응원을 보내는 시간이에요. 식물들은 비를 맞으며 자라나고, 그 순간조차도 서로의 존재를 느껴요. 아무 말이 없어도요.
어린아이가 우산을 들고 빗속을 걸을 때, 발밑의 풀잎은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어요. 나무는 머리 위에서 조용히 지켜봐요. 꽃들은 “다녀와요, 안녕!” 하고 눈인사를 보내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풀과 나무와 꽃들은 비 오는 날에도 분주히 살아가고 있어요. 그건 눈에 보이진 않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변화예요.
그래서 비가 오는 날, 우리는 슬퍼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아도 돼요. 비는 식물들에겐 선물이고, 쉼이고, 따뜻한 인사예요. 비가 오는 날 창밖을 바라보며, 그 물방울들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깨우고 있는지 생각해 봐요. 조용히, 천천히, 그러나 아주 깊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세상이 우리 곁에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