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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릴때 달팽이 1인칭 시점에서 세상 소풍구경 나들이

by mynews8371 2025. 5. 1.

 

 

 

 

달팽이사진

 

 

 

 

물방울이 하나씩 톡, 톡.
하늘이 조용히 울고 있는 날이면 나는 천천히 껍질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요. 안녕, 나는 달팽이예요. 비가 오면 세상이 조금 부드러워지거든요. 땅도 촉촉하고, 풀잎도 반짝반짝. 마치 누군가가 세상을 조심스럽게 닦아 놓은 것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나는 이런 날이 좋아요.

 

 

햇빛이 쨍쨍한 날은 솔직히 조금 무서워요. 내 몸은 물처럼 말랑말랑해서, 바짝 마른 땅 위를 걷다 보면 내 피부가 아플 수도 있거든요. 그럴 땐 껍데기 속에 꼭꼭 숨어요. 하지만 비가 내리는 날은 달라요. 세상이 나를 초대하는 것 같아요. “이제 나와도 괜찮아.” 하고 속삭여 주는 것 같거든요.

 

 

내가 천천히 움직이는 걸 보고 누군가는 게으르다고 말해요. 하지만 나는 세상을 자세히 보고 싶어요. 풀잎 사이에 맺힌 빗물, 흙냄새, 조용한 바람. 그런 걸 놓치고 싶지 않아요. 나는 달팽이니까, 나만의 속도로 사는 게 좋아요.

혹시 내 피가 무슨 색인지 궁금했나요? 나도 피가 있어요. 그런데 빨갛지는 않아요. 내 피는 약간 푸르스름하거나 연한 회색이에요. 그건 내 피 속에 ‘구리’라는 특별한 성분이 있어서 그래요. 사람은 ‘철’ 때문에 피가 빨갛고, 나는 ‘구리’ 때문에 피가 푸르스름한 거예요. 우리 모두 다르게 만들어졌지만, 다 소중한 생명이에요.

 

 

비가 오는 날, 나는 길을 떠나요. 아주 작은 여행이지요. 누가 보면 그저 흙 위를 조금 기어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내게는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해요. 물방울이 내 등에 떨어질 때, 그건 마치 인사를 건네는 친구 같아요. “안녕, 잘 지냈어?” 하고 말이에요.

가끔 아이들이 나를 보고 웃으며 손가락으로 가리켜요. 어떤 아이는 조심스럽게 손바닥 위에 나를 올려 놓기도 해요. 나는 천천히 안테나를 움직이며 인사를 해요. “나는 달팽이야. 느리지만, 멈추지 않아.”

밤에는 조용히 나뭇잎 밑에서 잠을 자요. 그늘지고 조용한 곳이 좋아요. 아침 햇살이 세상을 깨우면, 나는 다시 껍질 속으로 들어가요. 낮은 나에겐 조금 거칠어요. 햇살도, 소리도 너무 강하거든요. 나는 조용한 게 좋아요.

 

 

비 오는 날은 내가 숨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에요. 그럴 땐 세상이 나를 품어줘요. 누가 나를 찾아보지 않아도 괜찮고, 누가 빠르다고 재촉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런 날, 나는 나답게 살 수 있어요.

나는 작지만, 세상을 느낄 수 있어요. 풀잎의 떨림, 흙의 온도, 물방울이 흐르는 방향.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읽고 있어요. 그래서 나는 말하지 않아도 많은 걸 알고 있어요. 조용히,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나는 비를 좋아해요. 비가 오면 밖으로 나가고 싶어져요. 그건 그냥 기분이 좋아서가 아니에요. 그게 나에게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시간이에요. 마치 나만의 작은 파티가 열리는 것처럼, 세상이 조용해지고 모든 것이 부드러워지거든요.

 

 

나는 늘 말하고 싶었어요.
“느려도 괜찮아요. 나도 나름대로 길을 가고 있어요.”
누구나 자기만의 걸음으로 살아가니까요.

다음에 비가 오는 날, 밖에 나가면 조심히 발밑을 살펴봐 주세요. 작은 달팽이가 조용히 걷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 아이가 이렇게 속삭일 거예요.

“고마워요. 나를 기다려줘서.”